2008년 5월 25일 일요일

“아니, 제가 뭘 어쨌다구 그러세요?”

우리 아파트 1층 입구에 보면 광고지가 땅에 널부러져 있는 경우가 많다. 자기네 편지함에 있던 광고지를 빼서 땅에 버리는 것이다. 또 엘리베이터 안에도 쓰레기나 그런 광고지 같은 것을 버리는 사람들이 있다. 평소에 난 그게 참 불만이었다. 대체 어떤 놈들이 이런 짓을 하는 걸까. 여러 놈일까, 딱 한 놈일까. 어제도 집에 오는 길에 보니까 엘리베이터 바닥에 광고지가 버려져 있었다. 광고지 돌리는 사람이 자기네 집 대문에 붙여 놓은 것을 떼서 엘리베이터 안에 버린 것이었다.

내가 이런 이유로 인터넷 문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익명성의 그늘에 숨은 사람들, 군중 속에 은근슬쩍 끼어서 움직이다가 혼자가 되었을 때는 그림자처럼 사라지는 사람들. 간단히 말해서 나는 인터넷에서 바른 말, 멋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진짜 행동도 그렇게 하는지 믿을 수가 없고 믿기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누구 엘리베이터 안에 같이 탄 사람이 있다면 절대 엘리베이터 안에 광고지를 버리는 짓을 하지 않을 것이다. 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 때의 행동과 회사나 모임 내에서의 행동이 전혀 다를 수 있는 것이다.

헬로키티:
문제는 이런 분들이 그전까진 ‘개념 블로거’로서 활동했다는 거지요. 즉 거꾸로 말하자면, 넷상이라는 공간에서의 정체성이란 게 가식에 차 있는 것일 수도 있다는 겁니다. 위의 사건만 보면 ‘골빈해커’란 분은, 자기중심적이고 자기 실수는 끝까지 인정하지 않는 굉장히 편협한 사고방식인 분일 텐데 깔끔한 블로그와 정돈된 글로 잘 숨겼다는 것 아닙니까. 어떻게 보면 엘리트 키보드 워리어라고 할까요. 솔직히 온라인이 아무리 발전해도 오프라인을 대체할 수 없는 건 이런 이유 때문인 것도 같군요.

.. 아무 의미도 없는 행위이지만 충동적으로 나는 그 1층 입구와 엘리베이터 안에 버려진 광고지를 사진으로 찍어서 글질을 하려고 했었다. 그러다가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되었다. 그런 생각을 했던, 사진을 찍어서 글질 하려고 했던 내가 좀전에 담배꽁초를 길바닥에 버리고 오는 길이었던 것이다. 예전에 벤치에 재떨이용 깡통이 있을 때는 항상 그 깡통 안에 버렸지만, 자꾸 사람들이 담배꽁초나 담뱃갑 외의 다른 큰 쓰레기를 버려서 그 작은 깡통이 금세 꽉 차게 되고, 그러다 보니 사람들은 깡통 주변에 그냥 꽁초를 버리게 되고, 그러다 보니 청소에 관계된 누군가가 깡통을 치워 버린 것 같고, 그러다 보니 나도 꽁초를 버릴 데가 없으니 좀 구석진 데에다가 그냥 버리게 된 것이다.

다행히도 내가 땅바닥에 담배꽁초를 버리는 짓을 했다는 것을 생각해 냈기에망정이지, 아니면 난 마냥 엘리베이터에 광고지 버리는 놈만 욕하고 있었을 것이다. 바로 그것이다. 사람은 자기가 한 잘못은 모른다. 내가 이 인터넷이라는 특수한 공간에 글질을 할 때, 이 인터넷이라는 특수한 공간의 특성상 무언가에 대해 투덜댈 때 내가 과연 그 사실에 대해 투덜댈 자격이 되느냐를 나는 모른다는 것이다. 자격이 되는가를 생각하지도 않거니와, 생각했다고 하더라도 나는 내 편이기 때문에 내 잘못은 모르는 것이다. “아니, 제가 뭘 어쨌다구 그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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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법적 자격이 아닌 이런 양심상의, 사실상의 자격은 자기 스스로가 판단하는 것이고, 그래서 내가 엘리베이터에 광고지 버리는 놈들을 탓할 자격이 되는가는 내가 판단해야 할 일이고, 난 자격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만약 그 광고지 버린 놈들이 길에 담배꽁초를 버리는 사람들을 욕한 적이 없다면 난 더 나쁜 놈이 되는 것이다. 적어도 그놈들은 남 탓은 하지 않은 거니까.

그러니까 나는 앞으로 담배꽁초를 아무 데나 버리지 않아야 하고, 이 인터넷이라는 특수한 공간의 힘에 홀려서 함부로 남에게 투덜대서는 안 되는 것이다. 진정으로 떳떳하게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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