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5월 21일 금요일

싸이월드 중독에 관한 자학적이고 자기 고백적인 보고서

* 출처는 hihome.com 계정 쓰시던 분의 글인데 사라졌음.

그러니까, 그 일은 익스플로러가 뜨는 것과 거의 동시에 이루어지는 셈이다. 마이크로하고도 소프트한 인터넷 익스플로러가 뜨고 그와 동시에 일곱 자리 패스워드가 번개같이 입력된다. 엔터 키를 탁 누르는 순간 짠 하고 싸이월드 첫 화면이 나타난다. 이 일련의 과정은 불과 5초라는 짧은 시간 동안 P 양의 컴퓨터에서 이루어진다. P 양이 회사에 출근하자마자, 막 타온 커피가 채 저어지기도 전에, 재킷을 옷걸이에 걸기도 전에, 심지어는 V3 2004의 자동 업데이트 기능이 채 수행되기도 전에, 다른 모든 일을 제쳐 놓고 싸이월드 접속이 이루어진다.

P 양은 우선 자신의 미니홈피를 연다. 간밤에 들렀다 간 100여 명의 접속자 수를 흡사 상장을 받아 온 아이를 바라보는 어머니와도 같은 사뭇 흐뭇한 심정으로 체크한다. 자신의 기분을 ‘즐거움’으로 체크하고(어제는 ‘우울’이었다!), 자기 전에 사진첩에 올렸던 셀프 사진에 달려 있는 수십 개의 리플을 점검하고, 방명록에 지인들과 친우들과 랜덤 방문자들이 남겨 놓은 형형색색 무궁무진의 메시지를 살펴본다. 때론 야릇한 미소를 지으며, 한편으로는 설레는 왼쪽 가슴을 움켜쥐며 답글을 일일이 단다. 방명록에 답글을 다는 것은 P 양 일과의 가장 중요하고도, 뭐랄까, 말로 표현하기 힘든 즐거운 순간 가운데 하나이다. 이 모든 과정을 거치고 난 뒤, P 양은 그제서야 생각났다는 듯이 식기 직전의 커피를, 천천히 들이킨다.

P 양이 이러고 나서 곧바로 업무에 들어가느냐 하면 그렇지 않다고 말하는 편이 옳을 것이다. 간혹 사장이나 부장이나 기타 참견쟁이들이 P 양의 구석진 자리 근처로 다가오는 상황이라면 모를까, 대부분의 경우 P 양은 관심 1촌들의 홈피와 잘생긴 ‘투멤 남’의 홈피에 접속하는 데 추가로 30분을 할애하기 때문이다. 그 뿐인가. 만일 여기서 싸이질을 멈추었다면 P 양이 옆자리 유나 언니에게 싫은 소리를 듣고서 자신이 왜 싸이에 홀려 중독 증세를 보이는지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볼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 P 양은 다른 이들의 홈피를 유람한 뒤 선물 가게로 들어선다. 문제가 발생한 것은 그 지점이었다. 출근한 뒤 1시간이 넘도록 오직 싸이질 하나에만 전력으로 매진하고 있는 ― 그것도 최근 세 달 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일같이 오로지 싸이질만 거듭하고 있는 ― P 양을 보다 못한 왼쪽 자리 곽유나 팀장이 단호하고도 압도적인 권위가 실린 음색으로 한마디 건네고야 만 것이다. 음, 이봐, P 양, 그, 싸이월드인지, 싸이코월드인지 모르지만, 아무튼, 그, 그것 좀, 말이지, 집에, 가서, 할, 수, 없을까? 일도, 좀, 해야 하지, 않겠어? 아니, 타박하자는, 게, 아니라, 말이지, 그, 내 말은…

P 양은 해골 마크가 떠오른 미니미와도 같은 주눅이 든 표정으로, 네에, 주의하겠습니다, 하고는 익스플로러를 닫는다. 갓 입사했던 때의 초롱초롱한 모습으로, 마이크로하고도 소프트한 엑셀을 열고, 업무를 개시한다. 좋은 타이밍이다. 변태 미니미처럼 생긴 부사장이 열심히 일하는 P 양의 앞을 그야말로 슈크 님의 스킨 선물이라도 받은 듯한 흐뭇한 표정으로 지나갔기 때문이다. 표 계산에 열중하면서 P 양은 생각한다. 실장 언니의 말하는 방식은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때로는 나 스스로도 너무하다 싶을 때가 있어, 오늘 아침만 해도 무려 1시간 10분 여를, 싸이질 하나에 소비했다구, 그 뿐일까, 지난달 휴대전화 요금과 신용카드 고지서에 합산되어 청구된 그 많은 도토리 비용은 또 어떻구, 무려 250개의 도토리를 카드와 휴대폰 결제로 구입했단 말이지, 다람쥐가 아니고서야 이렇게 많은 도토리가 필요할 리가, 그러고 보면, 도대체 왜 나는, 이토록 싸이월드에서 많은 시간과 돈과 집중력을 사용하는 것일까? 이것 참 한번 생각해 볼 문제가 아닐 수 없지 않겠는가.

그래서, P 양은 자칫 정신과적 치료를 요하는 증세로 발전할지도 모르는 싸이홀릭 증세에서 과감하게 탈출하기 위하여 자신이 왜 싸이질을 하는지에 대해서 진지하고도 심도깊게 탐구해 보기로 결심했다. 일단 P 양의 생각은 싸이월드라는 인터넷 서비스의 특성으로 향했다. 이것 참 영리하고도 편리한 서비스가 아닐 수 없다는 생각이 P 양의 뇌리를 긁적이고 지나갔다. 한때 인터넷 서비스의 제왕으로 통하던 아이러브스쿨의 강력한 ‘인터넷은 사랑을 싣고’ 기능과, 다음의 카페 및 네이버의 블로그 기능과, 세이클럽 따위의 아동용 내 방 꾸미기 기능이 한데 합체된 사이트가 바로 싸이월드였던 것이다.

생각해 보면 싸이월드는 그것 참 많은 것을 가능하게 하는 기특하고도 신기한 사이트가 아닐 수 없다. 어제 홍대에서 술 마시며 찍은 일흔 장가량의 사진을 올려 놓고 친구들과 공유할 수 있고, 친구들 홈피에 올라가 있는 자신의 사진도 간편하게 퍼 올 수 있고, 언젠가 GQ에서 보았던 쟈니 뎁의 사진이나 모델 지젤의 토플리스 차림 사진도 올려 놓고 품평할 수 있으며, 게다가 3년 전 체코 여행가서 찍은 사진들 또한 게시할 수 있을 뿐더러, 더하여 잡지와 책에서 보았던 멋들어진 경구도 자유로이 올려 놓을 수 있는 데다가, 어랍쇼, 요즘 즐겨 듣는 냅튠스 노래를 BGM으로 깔 수도, 앗싸리, 김희선부터 최성국까지 온갖 연예인들의 홈피를 뻐끔거리며 그네들의 최대한 덜 가식적인 사는 모양새를 훔쳐볼 수도, 지화자, 작년에 헤어졌던 K 군의 홈피를 찾아내어 요즘 뭐하고 사는지 어떤 기집애와 같이 다니는지 시시콜콜 알아낼 수도, 절씨구, 초딩 시절 좋아하던 L 군의 홈피까지 찾아내어 세월 속에 변화된 그의 현재 모습을 확인할 수조차 있지 않은가. 물론 이벤트에 걸려 스토커 취급을 받을 위험성 또한 상존한다는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아무튼 참으로 유용하고도 버라이어티한 기능성을 지닌 사이트가 아니겠는가. P 양은 그렇게 생각했다.

잠깐만, 그걸로는 설명이 충분하지 못하다. P 양은 문득 앞서 생각해 낸 점들이 자신이 하루 2시간을 싸이질에 바치는 이유를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앞의 이유들은 자신이 선물가게에서 수십 개의 도토리를 날려 가며 스킨을 갈고, 미니룸을 꾸미고, 음악을 구입하는(생전 CD 한번 구입하지 않는 주제에!) 까닭을 설명하지 못한다. 그래서 P 양은 잠시 일손을 놓고 다 식어서 잔에 들어 붙을 지경이 된 커피를 한 모금 들이키며 다시 한번 생각을 모은다. 나는, 미숙이는, 재영이는, 그는, 쟤는, 또 어제 투멤이 된 걔는, 왜 그렇게도 싸이질에 시간과 도토리를 써 대는 것일까. 다시 한 번, 찬찬히 생각해 보자.

P 양의 생각은 돌고 돌고 챗바퀴를 돌아 마침내 자신이 진짜 그럴 듯한 이유는 뒤로 감춰둔 채 피상적인 핑계만 내밀었다는 데 도달했다. P 양은 스스로를 스토커나 폐인의 수준으로 전락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싸이질을 하는 목적을 단호하게 파헤쳐 보면 그 기저에는 아주 부끄럽고도 남사시러운 이유가 자리하고 있다. 그건 다름 아닌 남에게 인정받고 싶다는 심리인 것이다.

P 양은 왜 자신의 사진을 남들이 다 볼 수 있는 공간에 올려 놓는지 생각해 보았다. 다른 이유 없다. 과시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잘못 나온 사진은 게시하지 않는다. 예쁘게, 세련되게, 쿨하게 나온 사진만을 포토샵으로 가공하여 올린다. 그리고 그 밑에 주루룩 달린 지인 혹은 타인들의 찬사를 보며 자존하고 자족하는 것이다. 그걸 보노라면 내가, 꽤, 괜찮은 사람이다 싶은 기분이 되어 버린다.

또 P 양은 자신이 왜 하루에도 서너 번씩 전화 통화하고 두어 시간씩 함께 시간을 보내는 친구들과 굳이 싸이에서까지 만나 댓글을 나누고 선물을 교환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본다. 이 또한 과시하고 싶기 때문이다. 자신이 많은 친구들을 지니고 있으며, 그들과 아주 원만하고 유쾌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데다가, 얼씨구 그들과 이곳저곳 멋진 장소들을 돌아다니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점을 타인에게 드러내고 싶은 것이다. 요컨대 나는 아주 즐겁고 행복하게 정상적으로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미니미와, 미니룸과, 여타 잡다한 게시물들을 통하여 보여주고 싶은 것이다. 적어도 P 양이 생각하기에는 그게 솔직한 얘기처럼 보였다.

P 양은 조금 더 생각을 발전시켜, 남의 미니홈피와 연예인의 ‘검열된’ 미니홈피를 기웃거리는 일의 변태적인 측면에 대해, 그리고 선물 가게에서 턱없이 비싼 가격의 각종 장신구를 사들이는 일의 정신과적 문제점에 대해 생각해 보려다가 진저리를 치며 그만두었다. 그것은 옆자리의 실장이 흘겨보는 시선이 의식된 탓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스스로가 아주 극악스러운 스토커나 변태, 인터넷 중독자가 된 것만 같은 기분에 사로잡힐까 두렵기 때문이기도 했다. 스스로를 그 지경으로 비하하고 싶지는 않았다. 자존과 자족은커녕 자신이 인터넷 사이트 하나에 사로잡힌 무기력한 인간으로 떨어져 내리는 기분은 그야말로 끔찍한 것이었다. P 양은 해결 방법도 알고 있다. 과감하게 싸이 미니홈피를 닫고 거기서 탈퇴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더라도 내가 번듯한 직장에 다니는 생활인이라는 사실은, 수 명의 남자친구를 거느린 인기인이라는 사실은, 작년에는 체코에, 올해는 중국에 다녀온 코스모폴리탄이라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싸이에서 관계가 끊어졌다고 해서 1촌 친구들과 ‘현실계’에서의 관계까지 끊어지는 일 또한 없을 것이다. P 양은 그 해법을 분명 알고 있다. 그런데도, 그렇더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P 양은 점심을 먹고 사무실로 돌아온 뒤 또다시 싸이에 접속한다. 미니홈피를 연다. 이것 참, 빠져나올 수 없는 야릇한 매력이 아닐 수 없노라고 P 양은 생각한다. 나도 거기에 동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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